특허권침해소송 담당 법원이 권리남용 항변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를 심리ㆍ판단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시
대법원은 2010다95390 특허권침해금지및손해배상 사건(2012.1.19 선고)에서 특허발명에 대한 무효심결 확정 전이라 하더라도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가 무효로 될 것이 명백한 경우,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원칙적 적극)와, 특허권침해소송 담당 법원이 권리남용 항변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를 심리ㆍ판단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에 대해 판시하였다.
사안의 개요
원고(상고인)는 제1특허발명(특허등록번호 제457429호)과 기타 특허발명의 특허권을 기초로 피고(피상고인)에게 특허침해금지, 특허침해제품의 폐기 및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원심(서울고등법원 2010. 9. 29. 선고 2009나112741 판결)은 선행기술 1, 2, 3에 의하여 이 사건 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어 그 특허가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하다고 보아, 이에 기초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원고는 원심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참조조문
특허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발명을 보호ㆍ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특허법 제29조 제2항
특허출원전에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제1항 각호의 1에 규정된 발명에 의하여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는 것일 때에는 그 발명에 대하여는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특허를 받을 수 없다.
특허법 제126조(권리침해에 대한 금지청구권등)
특허법 제128조 (손해액의 추정등)
특허법 제133조 (특허의 무효심판)
민법 제2조(신의성실)
대법원의 판단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특허법은 특허가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별도로 마련한 특허의 무효심판절차를 거쳐 무효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특허는 일단 등록된 이상 비록 진보성이 없어 무효사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한다는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대세적(대세적)으로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특허법은 제1조에서 발명을 보호ㆍ장려하고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발명자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이익도 아울러 보호하여 궁극적으로 산업발전에 기여함을 입법목적으로 하고 있는 한편 제29조 제2항에서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이하 ‘통상의 기술자’라 한다)가 특허출원 전에 공지된 선행기술에 의하여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는 특허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사회의 기술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진보성 없는 발명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공공영역에 두고 있다. 따라서 진보성이 없어 본래 공중에게 개방되어야 하는 기술에 대하여 잘못하여 특허등록이 이루어져 있음에도 별다른 제한 없이 그 기술을 당해 특허권자에게 독점시킨다면 공공의 이익을 부당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특허법의 입법목적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한 특허권도 사적 재산권의 하나인 이상 특허발명의 실질적 가치에 부응하여 정의와 공평의 이념에 맞게 행사되어야 할 것인데, 진보성이 없어 보호할 가치가 없는 발명에 대하여 형식적으로 특허등록이 되어 있음을 기화로 발명을 실시하는 자를 상대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것은 특허권자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고 발명을 실시하는 자에게는 불합리한 고통이나 손해를 줄 뿐이므로 실질적 정의와 당사자들 사이의 형평에도 어긋난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보면, 특허발명에 대한 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특허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가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하고, 특허권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도 특허권자의 그러한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항변이 있는 경우 당부를 살피기 위한 전제로서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에 대하여 심리ㆍ판단할 수 있다.
[2] 특허권자인 갑 주식회사가 을 주식회사를 상대로 특허권에 기초하여 특허침해금지, 특허침해제품의 폐기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에서, 위 발명의 특허청구범위 제31항 중 일부 구성이 선행기술에 이미 개시되어 있거나 그로부터 용이하게 도출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서포터ㆍ베어링하우징 밀착구성’은 선행기술에 전혀 개시 또는 암시되어 있지 않아 통상의 기술자가 선행기술로부터 용이하게 도출할 수 없는 것이고, 특허청구범위 제31항은 각각의 구성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전체로 볼 때 선행기술에 의하여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가 무효로 될 것이 명백하다고 할 수 없는데도, 이와 달리 위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본 판결의 의의
무효심판 이외의 침해소송 등에서 특허권의 무효 여부를 다툴 수 있으냐에 대해 견해 대립이 있고, 기존 판례(대법원 1992. 6. 2. 자 91마540 결정 및 대법원 2001. 3. 23. 선고 98다7209 판결)는 신규성은 있으나 진보성이 없는 경우까지 법원이 특허권 또는 실용신안권침해소송에서 당연히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여, 무효심판에서만 진보성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특허법 제1조와 특허법 제29조 제2항의 입법 목적에 비추어, 진보성이 없어 본래 공중에게 개방되어야 하는 기술에 대하여 잘못하여 특허등록이 이루어져 있음에도 별다른 제한 없이 그 기술을 당해 특허권자에게 독점시킨다면 공공의 이익을 부당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특허법의 입법목적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보았다. 또한 대법원은 진보성이 없어 보호할 가치가 없는 발명에 대하여 형식적으로 특허등록이 되어 있음을 기화로 발명을 실시하는 자를 상대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것은 실질적 정의와 당사자들 사이의 형평에도 어긋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들이 비추어, 대법원은 "특허발명에 대한 무효심결 확정 전이라 하더라도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가 무효로 될 것이 명백한 경우,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고, 특허권침해소송 담당 법원이 권리남용 항변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를 심리ㆍ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종래 판결(대법원 1992. 6. 2. 자 91마540 결정 및 대법원 2001. 3. 23. 선고 98다7209 판결)을 변경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이번 판결은 진보성이 부정되어 무효가 될 것이 명백한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등의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여, 민법 제2조의 권리남용 법리를 진보성 판단에 적용한 의의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무효심판 이외의 각종 다툼에서도, 특허권자가 진보성 부정으로 무효가 명백한 특허권을 기초로 침해금지 등의 청구를 하는 경우, 상대방은 권리남용이라는 항변이 가능하고, 법원은 진보성 여부를 심리ㆍ판단할 수 있어 소송 경제의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특허법원 이외의 법원이 진보성 판단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바, 민사법원의 진보성 판단 시 전문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방안이 요구된다.
한편, 일본은 이번 판결과 유사한 취지의 일본 최고재판소 "킬비 판결" 이후, 특허법 개정으로 “특허권자 또는 전용실시권자의 침해소송에서, 당해 특허가 특허무효심판에 의해 무효로 될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허권자 또는 전용실시권자는 상대방에 대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제104조의3을 신설하여 권리남용의 법리를 특허법에 반영한 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입법 여부를 검토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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