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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를 묶은 ‘요리책’의 저작권 성립 여부
유미 법무법인 변호사 전응준, 신동환, 신호준

Ⅰ. 서론

최근 요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단순히 맛집 소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서 스타 또는 유명 셰프가 출연하여 자신만의 레시피를 선보이며 직접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공중파 및 케이블 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리법, 즉 레시피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많은 레시피들을 한데 모아 엮은 ‘요리책’의 경우에는 어떨까?

최근 국내 중소기업 A사가 다른 국내 중소기업 R사를 상대로 자신들이 제작한 요리책에 기재된 레시피를 그대로 베꼈다고 주장하여 무역위원회에 저작권 침해에 따른 불공정무역행위에 대한 조사를 신청한 사건에 대하여 당 법무법인이 R사를 대리하여 저작권 침해 주장을 배척한 사례가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Ⅱ. 무역위원회의 불공정무역행위 조사제도

불공정무역행위의 조사 및 산업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불공정무역조사법”이라 함)에서는 지적재산권 침해, 원산지표시 위반물품 수출입, 허위ㆍ과장 표시행위, 수출입질서 저해행위 등 불공정한 무역행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불공정무역조사법 제4조 제1항).

불공정무역조사법으로 보호되는 지적재산권의 범위는 특허권, 실용신안권, 상표권, 디자인권, 저작권 등에 영업비밀까지 포함되며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불공정무역조사법 제4조 제1항 제1호).

대한민국의 법령이나 대한민국이 당사자인 조약에 따라 보호되는 특허권ㆍ실용신안권(實用新案權)ㆍ디자인권ㆍ상표권ㆍ저작권ㆍ저작인접권(著作隣接權)ㆍ프로그램저작권ㆍ반도체집적회로의 배치설계권이나 지리적 표시 또는 영업 비밀을 침해하는 물품 등

이러한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물품(이하 “침해물품”이라 함)을 ① 해외에서 국내에 공급하거나, ② 침해물품을 수입하거나, ③ 수입한 침해물품을 판매하거나, ④ 침해물품을 수출하거나, ⑤ 수출을 목적으로 국내에서 제조하는 경우를 지적재산권 침해행위로 보는데(불공정무역조사법 제4조 제1항 제1호 가, 나목), 이러한 침해행위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누구나 무역위원회에 불공정무역행위의 조사를 서면으로 신청할 수 있고(불공정무역조사법 제5조 제1항) 무역위원회는 조사신청 후 20일 이내에 조사개시를 결정하여(불공정무역조사법 제5조 제3항)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6개월 이내에 조사를 끝내고 최종판정을 해야 한다(불공정무역조사법 제9조 제1항).

불공정무역행위에 해당할 경우 수출ㆍ수입ㆍ판매ㆍ제조행위의 중지, 당해 물품 등의 반입배제 및 폐기처분, 정정광고, 법 위반으로 무역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의 공표 등 시정조치명령을 내리거나(불공정무역조사법 제10조 제1항), 과징금(지식재산권 침해행위의 경우 최근 3년간 거래금액의 30% 이내)을 부과할 수 있고(불공정무역조사법 제11조 제1항), 시정조치명령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불공정무역조사법 제40조 제1항 제3호) 법원 소송에 비해 단기간 저비용으로 신속한 권리보호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Ⅲ. 사건의 경과

1. 사건의 개요
A사는 자신들의 고속해독쥬스기 제품에 함께 구성되어 있는 ‘고속해독쥬스기 레시피’에 수록된 레시피들의 구성과 내용을 R사가 수입하고 있는 가열 겸용 믹서기의 ‘레시피북’과 ‘사용설명서 및 보증서’에 수록된 레시피들이 그대로 베껴 A사의 복제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무역위원회에 저작권 침해 불공정무역행위 조사를 신청하였다. .

그런데 ‘레시피북’에 대해서 A사는 R사가 ‘레시피북’을 수입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하고 있다는 추측성 주장만 할 뿐 아무런 객관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결국 이 사건에서는 R사의 ‘사용설명서 및 보증서’ 중 한 페이지에 수록된 레시피들(이하 “피신청인 레시피”라 함)이 A사의 ‘고속해독쥬스기 레시피’의 대응되는 부분(이하 “신청인 레시피”라 함)의 저작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만이 문제가 되었다.

저작권 침해 성립여부는 ①신청인 레시피 단독으로 저작물성이 인정되는지와, ②신청인 레시피와 피신청인 레시피가 실질적으로 유사한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 무역위원회는 기술설명회, 현지조사 등을 거친 후 외부 전문가 3인에게 위 두 쟁점에 대하여 감정을 의뢰하였다(불공정무역조사법 제36조 제1항). 감정 결과 3인 중 2인이 침해, 1인만이 비침해라고 판단하여 침해 판단이 우세하였다.

2. 피신청인의 대응
피신청인은 이러한 감정결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여 감정인 2인의 침해 판단이 부당함을 밝혔다.

먼저, 레시피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의 양, 조리 시간, 조리 방법 등을 기술해 놓은 것으로 요리법에 해당하는 아이디어 그 자체이거나 적어도 아이디어와 표현이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저작권의 보호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신청인 레시피는 각 요리에 필요한 재료, 순서, 조리를 위한 쥬스기 작동 방법, 기호에 따른 취식방법만을 기술해 놓았을 뿐 요리에 대한 생각이나 경험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조리 방법에 대한 설명도 다른 요리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표현에 불과하여 창작성이 인정될 수 없으므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아니다.

다음으로, 신청인은 물론 신청인 레시피의 창작성을 인정한 감정인들 조차도 신청인 레시피의 어떤 부분에 창작성이 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지 못했다. 신청인 레시피는 단순히 고속해독쥬스기의 선택버튼에 해당하는 7개의 요리를 나열하였을 뿐 소재의 선택과 배열에 창작성이 인정될만한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신청인이 불공정무역행위의 조사를 신청하면서 제출한 조사신청서에 따르면, 자신들이 레시피를 개발하기 위하여 연구한 내용을 기록한 실험노트, 실험자료 등을 제출하면서 레시피의 내용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는 반면 정작 소재와 배열의 창작성에 대해서는 ‘사진 등을 생략한 후 해당 자료에 대한 목차만 두고 재료 및 사용법을 기재하였다’고 하여 아무런 편집 없이 레시피를 단순 나열하였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즉, 이 사건에서 신청인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상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재료의 양, 분쇄시간, 숙성시간, 가열 시간 등 레시피 내용 그 자체이지 신청인 레시피의 표현방법이 아니다.

3. 무역위원회의 판단
무역위원회는 신청인의 레시피를 묶은 ‘요리책’은 개별 레시피에 창작적 표현이 없고, 레시피들의 선택과 배열에도 편집자의 개성이 나타나지 않아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므로, 피신청인의 수입 책자에 신청인의 ‘요리책’과 동일ㆍ유사한 표현이 발견되더라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Ⅳ. 레시피의 저작권

저작권법은 ‘창작적인 표현’을 저작물로서 보호할 뿐, 아이디어나 사상 자체를 보호하지는 않는다(아이디어/표현 이분법).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요리법을 의미하는 ‘레시피’는 그 자체로는 아이디어에 불과하여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레시피의 저작권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판시한 판결이 아직 없으나, 미국에서는 레시피의 저작권과 관련하여 벌어진 수차례 법적 분쟁에서 요리 레시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능적 성격을 가진 지시 사항이므로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Publications International, Ltd. v. Meredith Corp. 88 F.3d 473 (7th Cir. 1996), Lambing v. Godiva Chocolatier, 142 F.3d 434 (6th Cir. 1998), Norberto Colon Lorenzana v. South American Restaurant Corporation, CV. 14-1698(1st Cir. Aug, 2015)], 동일한 취지의 최근 판결[Tomaydo-Tomahhdo LLC et al. v. George Vozary et al.,(6th Cir. Oct. 29, 2015)]에서도 “재료의 성분 목록은 단순히 사실에 관한 진술이고, 사실은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레시피의 지시사항은 ‘기능적 지시’이므로 저작권법의 보호에서 제외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다만 레시피들을 엮은 ‘요리책’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레시피들을 선택ㆍ배열ㆍ구성함에 있어 창작성이 인정되거나(편집저작물), 첨부된 요리의 사진 또는 그림의 창작성이 인정될 경우(사진저작물 또는 미술저작물)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Ⅴ. 마무리

위 사안에서 요리법에 해당하는 ‘레시피’는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에 당 법무법인은 신청인의 레시피 중 침해 판단의 범위를 최대한 한정하여 해당 부분에 창작성 있는 부분이 없음을 밝힘으로써 실제로 동일ㆍ유사한 표현이 있더라도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당 법무법인의 대응을 통하여 R사는 ‘사용설명서 및 보증서’가 포함되어 있는 가열 겸용 믹서기의 수입 및 국내에서의 판매 행위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