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행사

IP NEWS

계약서 작성시 주의사항 - 계약 무효와 손해배상
변호사 전응준, 신동환

Ⅰ. 서 론

기업의 운영과 사업 진행 과정에서 수많은 계약서가 작성된다. 계약 당사자들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되면 계약서를 허술하게 작성했더라도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적다. 관계가 좋을 때는 당사자들 간에 합의한 모든 내용들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내용이다. 문제는 항상 당사자들 간의 관계가 악화된 경우다. 이 경우 계약을 통해 합의한 사항에서 ‘너만 알고 나는 모르는’ 내용이 속출한다. 계약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면 계약의 조항 하나, 그 조항에 기재된 단어 하나에 울고 웃는 당사자가 바뀐다.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글에서 계약서 작성에 관한 특별한 사례를 살펴보려는 이유다.

계약 체결시 계약의 목적물이 실재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계약의 목적물이 대체 가능한 종류물이 아닌 특정물인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으로부터 집(A)을 구매하기로 했는데, 애초에 A라는 집이 존재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처음부터 계약의 내용을 이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집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계약 당시 실존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채권양도의 경우는 어떤가? B가 C로부터 C가 D에 대해 가지는 채권을 양수하는 경우, B는 C가 D에 대해 채권을 가지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 채권이 금전 채권이라면 B와 C 사이의 계약서와 금전 이체 내역만 확인하면 되는가? 만약 B가 C의 D에 대한 채권을 적기에 양수하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면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가?

아래에서는 사업을 위해 반드시 적기에 양수해야 했던 채권양수도계약의 목적물(양도대상 채권)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 문제되었던 당 법무법인의 항소심 승소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Ⅱ. 사건의 경과

1. 사안의 개요

원고와 피고는 피고가 甲에게 가지는 대여금 채권에 대한 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하였다. 甲은 원고와 피고가 모두 알고 있는 乙의 처(妻)이다. 원고는 양수대상 대여금채권이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고와 甲 사이에 체결된 금전소비대차계약서 원본(甲의 인감증명서 첨부) 및 피고가 甲의 계좌로 금전을 이체해주었던 거래내역 확인서를 제공받았다.

원고는 위 채권양수도계약으로 양수받은 채권을 즉시 활용해야 할 사정이 있었다. 만약 위 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원고는 채권양수도계약에 따른 대금 이외에도 많은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원고는 피고에게 위 채권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보증을 받기 위한 목적 및 만약 양수받은 채권에 문제가 발생하면 피고에게 그 책임을 묻기 위한 목적으로 계약서에 다음과 같이 손해배상 조항을 기재하였다. 해당 조항에서 약정된 위약벌 액수는 양도대상 금액의 2배인 26억8,000만 원의 막대한 금액이었다.

제8조 [손해배상]
가. “갑”의 사유로 계약이 해제되거나, “을”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갑”은 “을”에게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나. “을”의 사유로 계약이 해제되거나, “갑”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을”은 “갑”에게 제6조의 위약벌 및 기 지급받은 금액을 전액 반환하여야 한다.
다. “갑”이 양도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 지급 시까지 연리 10%의 지체보상금을 가산하여 “을”에게 지급하며, “을”이 “나”항의 위약벌 및 기 지급금액의 반환이 이행되지 않는 경우, 반환시까지 연리 10%의 지체보상금을 가산하여 “갑”에게 반환한다.

원고는 위와 같은 채권양수도계약 직후 채무자 甲에게 양수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해당 양수금 소송에서 甲과 피고 사이의 금전소비대차계약은 남편인 乙의 무권대리 행위임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법원은 원고의 甲에 대한 채권은 무효라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즉, 원고가 피고로부터 양수한 채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채권이었다.

이에 원고는 피고에게 채권양수도계약 해제를 통지한 후, 계약서 제8조 나.항에 근거하여 피고의 사유로 계약이 해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고에게 손해가 발행하였으므로 위약벌 및 원고가 지급한 양도대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청구하였다.

2. 사안에 적용되는 법리 및 법원의 판단

채권양도계약에 있어서 양도대상 채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매매 자체가 객관적, 원시적 전부불능이므로 매매계약이 무효가 된다. 이 경우 담보책임의 문제는 생기지 아니하고 다만 매도인의 계약체결상의 과실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이 문제될 뿐이다.

또한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한다(민법 제137조). 그러나 그 무효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아니한다(동조 단서). 따라서 채권을 매매하는 계약이 무효인 경우 손해배상 조항 등 채권양도계약의 나머지 조항도 모두 무효이다. 전술한 본 사안의 손해배상 조항은 큰 금액의 위약벌이 기재되어 있다는 점 이외는 특별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도 않으므로, 채권 매매계약이 무효이더라도 해당 손해배상 조항만으로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워 민법 제137조 단서의 예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법리에 따라 법원은 피고의 甲에 대한 대여금 채권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양도대상 채권이 존재하지 않는 원고와 피고 사이의 채권양수도계약은 원시적, 객관적 불능으로 무효라고 하면서, 원고는 피고에게 해당 계약의 해제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 또는 계약상 손해배상 조항에 근거한 위약벌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다만, 원고를 대리한 당 법인이 예비적으로 부당이득을 청구하였는데, 법원은 계약이 무효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채권양수도 대금은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고 판결하였다.

결국 원고는 피고에게 지급한 채권양수도 대금은 반환받았지만, 계약 조항에 의한 손해배상 내지 위약벌을 청구하지 못하여 큰 손해를 입었다.

Ⅲ. 시사점 및 마무리

민법 제137조는 임의규정이므로, 당사자들 간에 얼마든지 다르게 약정할 수 있다. 본 사안에서 원고에게 양도대상 채권의 존재가 중요했다면, 또한 만약 채권이 부존재하여 원고가 손해를 입는 경우 피고에게 큰 위약벌을 지급받고자 했다면, 이를 위해 당사자 간의 특별한 약정을 맺어야 한다. 즉, 채권이 부존재하는 경우의 손해배상 또는 위약벌에 관한 조항은 해당 계약의 일부 또는 전부가 무효가 되더라도 유효한 조항으로 규정했다면, 원고는 피고에게 해당 조항에 근거하여 손해배상 내치 위약벌을 청구할 수 있다.

아직도 다수의 기업들이 온라인 상에 돌아다니는 이른바 샘플 계약서를 찾아서 적당히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계약에는 항상 당사자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요구되는 조항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러한 조항들의 중요성은 분쟁이 발생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계약서에 대해 법률전문가의 검토를 거치는 것은 비용이나 시간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중요한 계약 또는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는 계약서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에 맞는 법률검토가 필요하다.